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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국여성건축가협회 가을답사
  • 작성일 : 2018-05-18
  • 조회 : 1621
딱 좋은 가을 어느 날, 도심에서 느껴본  자연을 닮은 그 곳

안지원 (주)제이원디엔디 C.E.O소장
언제부터인가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 성큼 와있고, 가을이구나 싶으면 이미 추운 겨울날씨에, 한창 딱 좋은 계절은 아쉽게도 느낄 새가 없이 가 버리곤 하는걸 푸념처럼 툴툴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계절이 뭔지 의심의 여지없는 화사한 가을날, 아직은 한창 마무리 중이라 약간은 삭막한 건축 현장에 수십 명의 여인네들이 때로 옹기종기 모여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힐끔힐끔 쳐다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낯선 풍경을 만들었다.

신 용산시대’를 펼칠 아모레그룹의 신 사옥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백자 달 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를 하였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접할 수 있었는데, ‘아모레퍼시픽’ 그 이름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멀리서부터 보여지는 그 외관의 이미지는 결코 낯익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건축을 전공 하였으나 졸업 후 계속 인테리어 일을 해 온 나에게는 이 대단한 건축가가 내 머리 속에 없었고, 아무런 선입견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아 오로지 내가 느끼는 정서적, 감성적인 부분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감탄을 자아내기도 내 맘대로 흠을 잡아보기도 하는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지하7층, 지상22층의 거대한 사옥에 7,000여명이 함께 근무할 수 있다고 하니 흔히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에 먼저 놀랍고, 두 번째로 꽉꽉 채우기에 열심인 여느 건물들과 달리 5층,11층,17층에 몇 개 층을 과감히 비워내고 ‘루프가든’이 조성되어 있어 그 대범함에 감탄이 절로 났다.
이런 곳에서 근무 하는 사람들은 참 그 자부심도 대단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부러우면 지는 건데 싶은 어쩔 수 없는 패자(?)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
아직은 공사 중이라 다들 어색한 안전모를 쓰고 말 잘 듣는 학생들처럼 건물 안을 쭈욱 돌아보았는데, 밖에서 느껴진 화이트의 깨끗하고 경쾌한 느낌에 반해 내부는 콘크리트 마감 그대로의 날것 같은 마감이 내.외부의 상반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어, 건축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었을까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노출콘크리트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마감과 매끈한 표면, 거기에 어마어마한 스케일 감으로 수직 오픈 된 메인 로비의 천정부분에서 슬라브마감, 그와는 별개로 설치된 콘크리트 이중 천정 면은 상상을 초월하는 놀람의 연속 이었는데, 눈에 보여지는 예쁘다 안 예쁘다의 감성적인 느낌보다 시공하는 분이 정말 고생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고, 건축주의 용기랄까?,  건축가의 도전이랄까? 하는  묘한 기분이 스치듯 지나갔다.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어떻게 건축주를 설득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 너무나도 궁금했다고나 할까? 그만큼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솔직히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계획된 내부 곳곳을 돌아볼 때 한창 내부 유리벽을 조립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우리가 여지껏 봐온 작업자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직접 시공 전문가가 나와서 ‘unifor’의 엣지 있는 유리벽체를 세우고 있는 거였다.
작업자가 이태리남자에 더구나 훈남이라니 더 장인 같아 보였다고나 할까?^^
이처럼 단순한 투명유리 조차도 그 투명도의 퀄리티를 감안해서 고가의 수입자재를 선뜻 사용하고 있는 그 공간들은 과히 자부심으로 꽉 차있는 듯 했는데, 우리가 소위 예산이라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을 포기 해 왔던 것이 떠올라 씁쓸하면서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이 건물에 연신 감탄사를 보내기에 바빴다.

모든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고, 백이면 백 다 느끼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비전문가인 나의 눈에는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기업이 뭔가 작정하고 덤볐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외관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쁜데 그 수많은 수직 루버들이 단지 그냥 멋으로 서 있다고 하는 부분이 왠지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날 것 같은 노출콘크리트의 끝날 줄 모르는 무한반복이 부드럽고 환한 이미지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는 약간의 부담스러운 부분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곳곳에 대범하고 넓게 펼쳐져 있는 루프가든과 그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뒷길 전경은 정말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조만간 준공이 되면 과연 사람들로 채워진 그 공간들은 또 어떤 표정일지 다시 한번 더 가서 느껴보고 싶다.



오전에 아모레퍼시픽 신용산 사옥을 열심히 둘러보고 삼삼오오 전철로 두 번째 답사지인 ‘서울로 7017’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인근 중식당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살짝 커피향을 그리워하며 설계에 참여한 김중섭 소장님의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모인 회원들 규모에 조금한 당황하신 듯 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여성건축가협회가 정말 멋진 모임이라는 생각이 새삼 더 들었다.

서울역을 휘감고 45년 동안 열심히 그 역할을 해온 이 고가는 나 역시 예전에 수도 없이 지나다녔던 길이라 그 궁금증도 컸는데, 이 길이 구조적인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노후 된 고가를 철거하기 위한 검토를 하던 중에 차를 위한 길이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사람을 위한 길로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대문시장.명동.남산.서울역(서부역)이 연결되어 있는 1키로 남짓한 이 길에 자동차를 막겠다고 했을 때 당시 차량정체나 상권위축 등 많은 우려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건축.조경 전문가인 비니 마스가 원 설계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복잡한 다른 나라의 여러 제약이나 현실적인 부분들이 다소 원안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다 구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국내 전문가가 선도적으로 진행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공원을 걸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고가위로 올라갔는데 날씨가 좋은 주말이라 연인이나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거닐고 있는 모습 속에, 뭔지 모를 불편함이 순간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햇빛!

너무나도 화창한 한낮의 태양은 평소 자외선은 일단 피하고 보는 나 같은 사람에겐 꽤나 부담스러웠고 공중에 떠있는 고가라는 구조물에  햇빛을 가릴만한 뭔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시원한 가을날씨도 마냥 주변을 편하게 둘러보며 산책을 하기에는 다소 꺼려지는 느낌이 있었다.
아마 한여름에는 더 고역일수도 있지 않을까?

가지고 있던 소지품으로 강한 빛을 가려가며 그 길을 걸어가는데 곳곳에 만들어진 동그란 형태의 화단과 비록 운영에 제약이 있어 잠시 비워둔 족욕장, 간간히 쉬어 갈수 있는 작은 커피숍과  빵집들.. 나름 다양한 시도들이 애 쓴 흔적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많은 꽃들과 풀들은 좋은 사람과 사진 찍고 싶은 욕구를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는데, 갈수록 사진 찍기가 내키지 않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이날엔 나도 인생샷을 건져보리라 많은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이 곳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었다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서울로 7017’은 의도도, 시도도 분명 좋은 것 같은데 왠지 모를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한번 방문했던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할 텐데 그런 매력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건 나만의 기분일까?
단지 차가 다니지 못하니 사람에게 그 길을 양보해서 이런 곳이 탄생한 것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을 텐데, 새로운 화단들이 등장하면서 다시금 안전을 보강하고 그 길을 다듬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고 하니 가성비가 좋은 곳은 아니구나 라는 약간의 아쉬움이 들고 앞으로 이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키로의 길을 엄청난 수다를 떨며 쉬엄쉬엄 걸어 만리동 방향으로 내려갔다.
이름 모를 작은 카페에서 커피한잔 시켜놓고 그래도 부족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치니 너무나도 좋은 가을날의 한가운데에서 오감을 깨울 수 있어 그간의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린 듯 하였다.

 벌써 내년 봄 답사가 기다려지는 건 나만의 오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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