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해외건축답사 베트남, 캄보디아 건축기행 건축교육,역사분과위원회 행사의 일환으로 2004년 2월 6일(금)부터 11일(수)까지 5박 6일간 베트남 하롱베이, 캄보디아 앙코르에 대한 답사가 총 15명의 회원의 참석으로 이루어졌다. 주요일정 2. 6.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도착 2. 7. 세계문화유산지정인 천하절경 3,000여 섬을 유람, 석회동굴(천궁동, 욕두동등)답사 2. 8.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 영묘, 군사박물관, 문학사원등 시내관광 2. 9. ANGKOR THOM 견학 2. 10. ANGKOR WAT, 바이욘 사원 견학 2. 11. 인천공항 도착 베트남 [ Vietnam ] | 국 호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위 치 :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 면 적 : 33만 1041㎢ (한반도의약 1.4배) 인 구 : 7993만 9000명(2001) 인구밀도 : 241.5명/㎢(2001) 수 도 : 하노이(인구 210만명) 주요도시 : 호치민시 (458만명), 다낭 (181만명), 하이퐁 (154만명) 공 용 어 : 베트남어 종 족 : 베트남족 88%, 타이, 므엉, 크메르 등, 55개 소수 산악민족으로 구성 문 맹 율 : 10% 종 교 : 불교(80%), 카톨릭교(7%)이며, 카오다이, 호아호아교 등 통 화 : 동(D) 환 율 : 15,003동 = 1달러(2001.9) 1인당 국민총생산 : 370달러(1999) 시 차 : G.M.T.+7 (한국보다 2시간 늦음) | 공휴일 : - 1월 1일 : 신정 - 1월 1~3일 : 구정연휴 - 2월 2일 : 베트남 공산당 창건일 - 4월 4일(음력) : 석가탄신일 - 4월 30일 : 베트남 해방일 - 5월 1~2일 : 메이데이 (국제노동절) - 5월19일 : 호치민 생일 - 9월 2일 : 베트남민주공화국 건국기념일 - 9월 3일 : 호치민 서거일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 기후 : 베트남은 지역별로 여러 가지 기후형태가 공존한다. 열대기후에 영향은 전반적으로 덥고 습하나 지역별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 북부지방 : 4계절이 있으나 사실상 봄, 가을은 아주 짧고 겨울은 한국 늦 가을날씨와 비슷하다. 더위는 3월부터 11월까지 지속된다. 이기간 수도 하노이는 푹푹 찌는 더위가 연일 계속된다. 12월부터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며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이런 습한 기후가 4월까지 계속된다. - 중부지방 : 중부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차츰 계절에 따라 온도차가 거의 없어진다. 다만 우기와 건기 시즌이 뚜렷해진다. 중부지방은 11월부터 12월까지 우기 시즌이다. 이때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며 비와 함께 태풍도 자주 닥쳐 훼나 다낭같은 도시는 심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 비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1월에서 2월까지는 시원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 남부지방 : 일년내내 온도변화가 거의 없으며 항상 30℃이상의 기온을 유지한다. 남부지방은 중부지방과 같이 우기와 건기시즌이 뚜렷이 구분된다. 그러나 남부지방 우기는 중부지방과 달리 낮 시간에 열대성 소나기가 잠시 내린다. 따라서 여행에 큰 지장이 되지 않으며, 5월에서 10월까지 사이공시에는 매일 1시간 가량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내려가 훨씬 시원해진다. 물론 건기에는 비 한 방울도 구경하기 어렵다. - 고산 도시의 기후 : 베트남에는 고산도시가 많다. 유명한 고산도시가 북부에 중국 국경과 인접한 사파(SaPa), 땀다오(Tam Dao), 중남부에 달랏(Dal Lat) 같은 도시들이다. 특히 사파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판시판 봉(3,143m)이 있다. 이런 고산 도시들은 일년내내 서늘하며 습기가 많은 기후이다. 이곳에서는 기온이 떨어지는 10월~3월에는 털모자나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국제공항 : 호치민 - 탄손넛 국제공항 하오니 - 노이바이 국제공항 다 낭 - 다낭 국제공항 |
하롱베이 [ Ha Long Bay ] | 베트남 북부에 있는 만(灣).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넓이 1,500㎢에 이르는 만이다. 베트남 제1의 명승지로, ‘바다의 구이린[桂林]이라고 불린다. 1962년 베트남의 역사·문화·과학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그 아름다운 경관으로 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 목록 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록되었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이나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3,000여 개나 되는 섬과 기암이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 위로 솟아 있다.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작은 섬들, 환상적인 동굴이 있는 섬들이 기후나 태양 빛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과 빛깔을 미묘하게 바꾸는 광경 등이 절경을 이룬다. ‘하(Ha)'는 ‘내려온다', ‘롱(Long)'은 ‘용'이라는 뜻으로, ‘하롱'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의미이다. ‘하롱'이라는 지명은,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보석과 구슬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의 기암(奇岩)이 되어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긴 세월에 걸쳐 자연이 조각해 낸 기묘한 이 조각의 세계에는 개·귀부인·물개·사람머리·엄지손가락 등 이름이 붙어 있는 기암만도 1,000여 개나 된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무인도이지만, 많은 종류의 포유동물과 파충류, 조류가 서식하고 다양한 식물상이 존재한다. 주로 바문섬과 캣바섬에서 열대림이 발견되며, 바다에는 1,000종 이상의 어류가 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들에는 종유동(석회암동굴)이 있는 곳이 많다. 수억년의 세월에 걸쳐 석회를 머금은 물은 천정으로부터 종유석을 흘려 내려보내고 바닥에서는 석순을 쌓아올렸다. 몇 개의 섬에서는 4500년 전의 잘 다듬어진 돌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베트남 본토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돌도끼였으며, 혼가이섬에서는 호아빈 문화로 알려진 1만 년 전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 만 안에는 20∼30가구가 모여 사는 해상 마을이 5개 있다. 작은 바위에 밧줄로 묶어놓은 해상 가옥들이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의 바위 사이에 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외국인을 포함하여 100여 만 명에 이른다. | |
하노이 [ Hanoi ] | 인구는 110만 명(1995)이다. 통킹삼각주의 송코이강[紅河] 굴곡부 우안에 있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중국의 역대 왕조는 이곳에 도독(都督)을 두었다. 베트남의 여러 왕조와, 19세기 후반부터 인도차이나를 지배하였던 프랑스도 하노이를 수도로 하였고, 1940∼1945년에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일본군도 하노이를 본거지로 삼았다. 1945년 9월 식민지 지배를 벗어난 베트남은 독립을 선언하고 역시 하노이를 수도로 정하였으나, 1954년 제네바협정에 의하여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뒤부터는 공산베트남의 본거지가 되었다. 1976년 베트남 전역이 공산화된 후에는 통일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정미(精米)자동차 수리자전거기계잡화 등의 공업이 성하며 베트남 경제의 축을 이룬다. 시가지는 왕조시대부터의 구시(舊市)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신시(新市)로 이루어진다. 구시는 30개의 탑문(塔門)과 성벽으로 둘려 있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유적(遺蹟)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신시는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프랑스식 근대건축물이 있고 현재는 정부기관국립극장시립극장호텔박물관종합대학 등이 있으며 구시와의 사이에 호안키엠[還劒] 호수 등의 관광지가 있다. 베트남 북부의 철도도로수운항공로 등이 모두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고, 행정상공업문화교육 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호치민 묘소(Ho Chi Minh's Mausoleum) 호치민 사망(1969년)후 1975.9.2에 완공된 석재묘소로 건물 내부에 호치민 주석의 시신이 유리관 속에 안치되어 있음. 호치민은 생전에 화장을 원했으나 레닌, 스탈린의 예를 쫓아 베트남 국민의 단결을 표상하기 위해 묘소 건물로 지어짐. 묘소 뒷편(500m)에 호치민 생존 당시 거소 및 사무실용 목조건물, 호치민 박물관이 있으며 전면의 바딩(Ba Dinh) 광장(국가 주요행사 장소)을 중심으로 주석궁(President Palace), 공산당사, 국회, 외무부, 외국 공관 등 핵심기관이 위치하고 있음. 매일(월. 금요일 제외) 08:00∼11:00 일반에 공개되며 매년 9∼11월 초순간 연례 보수기간에는 문을 닫음(호치민 시신을 러시아로 옮겨 부패방지 처리함). 베트남 국회와 공산당 본부 건물 건너편 넓은 바딘 광장에 짙은 갈색의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의 웅장한 건물이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이룩해낸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받고 있는 호치민의 묘소이다. 묘소에는 아직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 대리석으로 밑단을 깔고 다시 20개의 주홍색 대리석 기둥을 세운 이 거대한 무덤 속에는 호치민의 시신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자는 듯이 누워있다. 문묘(文廟) Van Mieu 11세기에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다. 특히 그 안에 있는 규문각은 하노이 상징물이 되고 있다. 19세기 원조(沅朝)시대에 만든 이 규문각에는 8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들 비석은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거북 위에 세워져 있고 15-18세기의 300년 동안 2년에 한번씩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타원형의 기와로 만든 지붕이 아주 멋있고 벽이 없이 탁 트인 건물과 넓은 경내는 거리의 북적거림과는 거리가 먼 아주 조용한 곳이다. 지금이라도 그 당시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이 나타날 것만 같다. 공자 위패를 모시기 위해 1070년에 세워진 이래 1076년부터는 최초의 대학(성균관과 유사)으로서 유교학자를 양성 했음.문묘는 전통 베트남식 건물로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었으며 경내에는 1484∼1787년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새긴 82개의 진사제명비가 서 있음. 호치민 박물관 Bao Tang Ho Chi Min 90년 5월 19일. 호치민 탄생100년이 되는 날에 개관했다. 호치민의 묘 옆에 있는 하얗고 멋있는 건물로 내부장식은 참신하면서 예술적이다. 구소련의 원조를 받아 레닌 박물관의 전문가가 설계를 담당했다고 한다. 호치민 생가의 모형, 애용품, 편지, 혁명과 관련되는 것이 전시되고 있으며, 민족의 독립과 통일에 관련 된 것들과 세계의 움직임을 볼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상영되고 있다. 영어, 불어, 러시아어 가이드가 있으므로 부탁하면 안내해 준다. 시멘트 건물(3층)로 내부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음. 과거관과 미래관으로 구분된 전시실에는 평화, 행복, 자유 등을 상징하는 외국작가의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음. 군사 박물관 중국 침략시 쭝자매와 중국침략군이 벌인 전투 상황에서부터 프랑스 식민통치 기간 중에 항쟁, 남 베트남 해방전쟁, 미군과의 전투, 79년 캄보디아 침공 상황까지 전시되어있다. 당시의 군복, 깃발, 훈장,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쟁 기록영화상영도 20여분간 관람할 수 있어 베트남의 전쟁 역사를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
캄보디아 [ Cambodia ] | 위치 :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 면적 : 18만 1035㎢ (한반도의 80%정도) 인구 : 1341만 4000명(2002) 수도 : 프놈펜(Phnom Penh) 정체 : 입헌군주국 공용어 : 크메르어 통화 : 리엘(Riel) 환율 : 3,835Riel = 1달러(2002.9) 1인당 국내총생산 : 260달러(2000) 기후 : 열대 몬순성 기후(고온다습) 평균기온 27℃ 5~10월은 우기(평균기온 30℃, 거의 매일 비가 옴) 11~4월은 건기(평균기온 27~35℃, 가끔씩 비가 옴) 국제공항 : 포첸틍 국제공항(프놈펜), 씨엠립국제공항(씨엠립) 음식 : 쌀이 주종을 이루고 각종 향신료가 많이 첨가된 음식들 이 많아 진한 맛이 특징이고 한국인의 입맛에 부담이 적다. 음료 : 식수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다. 관습과 예절 : 전통적인 인사법은 가슴높이에서 두 손을 합장, 고개를 가볍게 숙인다. 사람머리에는 영혼이 있다고 여기므로 어린애라도 머리를 만져서는 안된다. 사원 출입시 노출이 심한 옷은 삼가고 모자와 신발은 벗는다. 현재 캄보디아의 총인구는 1,200만명 정도이며, 인구의 대부분이 본토의 크메르 족이 차지하고 있는데 90% 정도이다. 나머지는 중국에서 이주를 해온 화교출신들과 인근 트남에서 넘어온 베트남들이 거의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소수민족은 주로 산악이나 강변에 접해 살고 있다. | f |
씨엔립 유적 위치도 | |
앙코르 톰 [ Angkor Thom ] | 캄보디아 톤레사프호(湖) 북방에 있는 앙코르문화의 유적. 소재지 : 캄보디아 톤레사프호 북방 시대 : 1200년경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톰은 큰[大]이라는 뜻을 나타내므로 앙코르톰은 ‘대왕도'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유구(遺構)는 자야바르만 7세가 왕국의 수도로서 1200년경에 조영(造營)한 것이다. 1변 3 km인 성벽의 정사각형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중앙에는 세계의 중심으로 보이게 한 바이욘묘(廟)가 높이 솟고, 그 동서남북으로 2추축대로(樞軸大路)가 도시를 4분하며 2추축이 성벽과 만나는 곳에 왕도의 문이 4개, 왕궁에서 동으로 뻗은 대로 위에 1개, 모두 5개의 문이 있다. 이 5개의 문은 앞면에 돌의 커다란 뱀을 껴안은 거인상(巨人像)의 열(列)을 난간으로 한 육교를 끼고 있으며, 문 자체는 거대한 4면의 얼굴을 한 탑문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 유적의 중심부에 있는 바이욘묘는, 그보다 반세기 정도 앞서 세워진 앙코르와트와 함께 앙코르문화의 쌍벽을 이룬다. | |
앙코르 와트 [ Angkor Wat ] |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문화의 대표적 유적. 앙코르 톰의 남쪽 약 1.5km에 있으며, 12세기 중반 경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하지만, 반영구적 사원은 아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 ( 힌두교에서 최고신인 시바신(神)과 양립하는 천신(天神).) 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 ·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사당탑(中央祠堂塔)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 m)이 4 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으며, 높이 59 m의 중앙 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四角錐)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石彫裝飾)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全長) 760 m에 이르는 제1회랑벽(回廊壁)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泉水],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柱廊)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저화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82년 집계에 의하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 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여점이 도난, 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83년 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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